성령의 날들

이번 주는 성경력상 샤부오트와 오순절을 기념하는 주간으로, 시나이 산에서 율법(토라)이 주어진 사건과,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였던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신 사건을 기억하고 기리는 때입니다. 이 시기는 성경적 역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실질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교훈을 주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발견하는 그 소중한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문화적 환경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합리주의와 인본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은 오늘날의 서구 문화 속에서, 우리 신앙의 고대적이고 신비로운 측면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 안에서 매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우리의 믿음은 21세기의 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믿음이며, 하나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이해로 우리를 이끕니다. 옛 선지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살며 말씀하실 때, 주변 문화에 동화되는 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갖는 이해가 단지 ‘현대적’이고 문화적으로 통용되는 세계관과만 일치한다면,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고작 몇 인치 정도밖에 깊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니케아 신조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주님이시며 생명의 주님이시며,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시는 분이시다.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성령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오늘날 우리 문화가 살아가고 운영되는 방식과는 거의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발출되어 매일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 생명의 주인이신 보이지 않는 분? 이러한 묘사들은 우리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에 맞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단순히 ‘구글’로 검색해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으로 경청하는 태도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방식이 인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사과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시곤 합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이 다른 차원의 것이며, 따라서 우리 주변의 세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일상 문화에 편리하거나 쉽게 동화되지 않으실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요?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이러한 반문화적 생활 방식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으며, 우리 모두를 둘러싼 모든 현대적 편의 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지탱해 온 기도에 깊이 뿌리내린 고대의 리듬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 사회에서,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기도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 되지 못합니다. 그 대신, 다른 수많은 ‘해결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필요한 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인터넷 검색 엔진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를 움직이시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충만함 속에서 그분과 함께 걷는 법의 깊이를 탐구하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2023년에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우리의 믿음이 결코 우리 주변 사회의 하위 문화가 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해야 합니다. 2,000년 전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7:16). 우리의 믿음은 세상이 생각하고 추리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날이 갈수록 세상이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의 사회적 행동이 지배하는 기술 시대로 더욱 빠르게 치닫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의존이 인간의 혁신에만 머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로마서 8:14)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우선순위 체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므로 우리 삶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삶 속에서 순간순간 건전한 유연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성전이며, 여러분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여러분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 고린도전서 6:19-20)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도록 우리 삶에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매일의 일정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매일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 중 하나이며,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셋째,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늘날에도 성령의 은사가 역사하고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일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당장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해 지혜의 말씀이 주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해 지식의 말씀이 주어지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해 믿음이 주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해 병 고치는 은사가 주어지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예언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8-10)

바울은 영적 은사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며, 우리 삶 속에서 성령의 이러한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면했습니다(고린도전서 12:31). 우리는 성령 안에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 사모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에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친 선구자 중 한 분이신 고(故) 잭 헤이포드 박사는 ‘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유명한 설교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일상생활과 사역에 있어, 그분의 사역을 움직이게 했던 것과 동일한 능력의 원천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을 받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성령님의 이러한 매일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는 굳건히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모든 일에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큰 시련이 닥친 시기를 맞이했으며, 이 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전례 없는 방식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니실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샤부오트와 오순절 시즌, 그리고 그 이후에도 ,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들을 귀와 깨달을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전 세계적으로 펼쳐 가시는 기적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성령의 능력과 충만함 속에서 살아갈 때입니다!